여행

卍 2020년 01월 24일 아이와 함께한 운주사 감성 탐방기

Blue O.S. 2025. 4. 8. 12:00

2020년 1월 24일, 눈은 오지 않았지만 흐리고 우중충한 날. 아이와 함께 화순 운주사를 찾았습니다. 미완의 석불과 흐릿한 하늘이 만들어낸 신비롭고 쓸쓸한 그 풍경을 글로 담아보았습니다. 거북바위의 석탑, 석불군, 와불, 채석장, 칠성바위 등 운주사의 주요 명소들을 천천히 걸으며 경험한 그날의 기록을 공유합니다.


🌫️ 흐린 겨울날, 신비의 땅을 걷다

2000년 1월 24일, 아이와 함께 찾은 화순 운주사

그날은 잿빛 하늘이 온 대지를 덮고 있었어요. 눈은 오지 않았지만, 바람은 차갑고 공기엔 겨울 특유의 쓸쓸함이 묻어 있었죠. 회색빛 풍경에 감싸인 그 길을,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 운주사로 들어섰습니다.

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적이 흐르는 길. 옛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. 주변에는 사람 한 명 없었고, 우리 둘만의 시간과 공간이 열린 듯했습니다.


📿 전설 속에 멈춰 선 사찰, 운주사

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사찰로, 1,000년이 넘는 전설과 미완의 석불들이 신비로움을 자아냅니다.

이 사찰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요. 고려시대에 도선국사가 "이곳에 불국토를 세우기 위해 하룻밤 사이에 천 개의 불상과 탑을 만들려 했으나, 새가 울어 날이 샜다고 생각해 작업을 멈췄다"는 이야기입니다. 그날 이후 불상과 탑은 완성되지 않은 채 남겨졌다고 해요.

이야기처럼, 운주사는 곳곳에 미완의 흔적이 남아있고,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완성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.

영구산 운주사


🐢 거북바위 오층석탑 & 칠층석탑 – 시간을 이고 선 돌

절 입구 근처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 위엔 오층석탑과 칠층석탑이 자리 잡고 있어요. 이 바위는 정말 거북처럼 생겨서 아이도 "진짜 거북이 같아!"라며 흥미로워했죠.

두 개의 석탑은 정교하거나 웅장하진 않지만, 오래된 시간의 지층을 품고 있는 듯한 단단한 존재감을 풍깁니다.

겨울의 거북바위는 침묵 속에 있었고, 그 위에 앉아 있는 탑들은 하늘과 땅을 모두 지켜보는 지혜로운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. 흐린 하늘 아래서 그 모습은 더욱 신비로웠어요.


🧘‍♂️ 석불군 – 말 없는 부처들의 행렬

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석불군이 펼쳐져요. 이름 그대로 수많은 석불이 곳곳에 흩어져 앉아있죠.

어떤 부처는 눈을 감고, 어떤 부처는 목이 없고, 어떤 부처는 아예 조각이 덜 되어 몸만 남아있기도 해요. 그 미완성의 상태들이 마치 ‘완성’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더라고요.

아이도 조용히 그 돌부처들 사이를 걸었고, 저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어요. 불상 하나하나를 바라보며, 이곳을 만들던 이들의 손길과 멈춘 순간들을 떠올렸죠.

겨울이라 더 울림이 깊었어요. 온 세상이 숨을 죽인 듯 고요했고, 그 고요 속에서 돌부처들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졌습니다.

 


🌄 전망대  – 흐린 풍경, 또렷한 마음

조금 더 걸어가면 작은 전망대가 나옵니다. 날씨가 맑았더라면 멀리까지 펼쳐졌겠지만, 그날은 안개와 흐림이 겹쳐 세상이 절반쯤만 보였어요.

하지만 그 흐림 속에서 마음은 오히려 선명해졌죠. 아이는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았고, 저는 그 옆에서 조용히 서 있었어요.


🛌 와불 – 잠든 듯 깨어 있는 부처

운주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와불입니다. 거대한 크기의 누운 부처님은 지금도 조각 중인 듯한 인상을 줘요. 얼굴은 비교적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지만, 몸체는 거칠고 단단한 암반이 그대로 남아있죠.

그 앞에 섰을 때, 시간도 멈춘 듯 했어요. 저는 입을 다물었고, 아이도 숨을 고르며 바라봤어요.

와불 앞의 돌계단에 앉아, 조용히 기도 아닌 기도를 드렸어요. 말은 없었지만 마음은 가득했던 순간이었죠.

 

 


⛏ 채석장 & 칠성바위 – 조각의 뿌리

사찰의 뒤편엔 조용한 채석장이 있어요. 수많은 탑과 불상을 조각하던 돌들이 바로 이곳에서 채취되었대요.

그 돌덩이들은 여전히 거기 있었고, 마치 조각가의 손을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. 돌 위엔 이끼와 낙엽이 살짝 내려앉아 있었고, 그것조차도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.

조금 더 올라가면 칠성바위가 나옵니다. 바위 위에 북두칠성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는 이야기가 있죠. 우리는 둘이 나란히 서서 조용히 소원을 빌었어요. 아이의 눈이 반짝였고, 저는 마음속으로 '그 소원, 꼭 이루어지길' 바랐죠.

 


🛕 구층석탑 – 여정을 마무리하며

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또 하나의 칠층석탑. 운주사의 상징 같은 탑이죠.

그 앞에 서자, 오늘 하루의 감정이 조용히 정리되는 느낌이었어요.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, 마음속은 조금 맑아진 듯했어요.

아이도 “다음엔 날씨 좋은 날 와보자”라고 말했고, 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죠. 흐린 날의 운주사도 너무 좋았지만, 또 다른 계절의 운주사도 궁금했어요.

 


📌 혼행 꿀팁 (혼자라도, 아이와도 좋은 여행)

  1. 평일 오전 방문 추천 – 운주사는 평일 오전이 가장 한적하고 사색하기 좋아요.
  2. 편안한 운동화 필수 – 언덕과 흙길이 많아 걷기 편한 신발이 좋아요.
  3. 따뜻한 차 한 병 준비 – 겨울엔 특히 따뜻한 음료가 큰 위로가 됩니다.
  4. 조용히 머무를 시간 확보 – 사진만 찍고 지나가기엔 아까운 곳, 꼭 앉아서 쉬어보세요.
  5. 근처 화순 온천과 연계 여행 추천 – 여정 후 온천에서 몸을 녹이면 완벽한 마무리!

그날의 회색빛 운주사는, 슬프지 않은 쓸쓸함과 고요한 아름다움을 남겼습니다.

돌부처들이 말없이 지켜보는 그 땅에서, 우리는 나란히 걷고, 느끼고, 기억하게 되었죠.

지금도 그날의 공기와 풍경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. 어쩌면, 그 모든 순간이 잠든 돌들의 기억 속에 새겨졌을지도 모르겠네요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