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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

창경궁 - 탐방기, 그 안에 담긴 찬란함과 상처의 기억🌸

by Blue O.S. 2025. 4. 18.

 

– 조선의 궁궐에서 식민지 유원지로, 그리고 다시 고궁으로의 귀환 –

서울 도심 한가운데, 고요하면서도 품격 있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궁궐이 있습니다.
바로 ‘창경궁(昌慶宮)’입니다.

많은 이들이 덕수궁이나 경복궁은 알고 있지만, 창경궁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죠. 하지만 이곳은 조선의 다섯 대 궁궐 중 하나로, 찬란한 역사와 함께 아픈 기억까지 품은 곳입니다.
이번에는 제가 직접 다녀온 창경궁의 모습과, 그 뒤에 숨겨진 역사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해볼게요. 😊


🏯 창경궁의 시작: 할머니, 어머니, 숙모를 위한 궁궐

창경궁의 역사는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뒤, **창덕궁 옆에 별궁인 ‘수강궁(壽康宮)’**을 지으면서 시작됩니다.

하지만 진정한 창경궁의 모습은 **성종 15년(1484년)**에 완성됐어요.
성종은 할머니인 자성대왕대비 윤씨, 어머니 인수대비 한씨, 숙모 인혜왕대비 한씨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을 ‘창경궁’으로 바꾸고 대대적인 증축을 단행합니다.

📌 주요 건물:

  • 명정전(明政殿): 정전
  • 문정전(文政殿): 편전
  • 수녕전(壽寧殿): 침전
  • 경춘전, 통명전, 환경전, 인양전, 양화당 등도 이 시기에 건립

조선의 왕과 왕비, 대비들이 생활하던 창경궁은 조선왕조의 후궁 공간이자 중요한 정치 공간이었어요.


🔥 전란과 화재 속에서 살아남은 궁궐

임진왜란 당시 창경궁은 전소되는 비운을 맞습니다.
이후 **광해군 7년(1615년)**에 재건되었지만, 창덕궁이 먼저 복구되어 창경궁은 보조 궁궐로 기능했죠.

그 후에도 인조, 순조 때 큰 화재가 일어나는 등 창경궁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수차례 손상을 입습니다.


🇯🇵 일제강점기: 궁궐을 유원지로 전락시키다

창경궁의 가장 아픈 기억은 일제강점기입니다.

1909년, 일본은 창경궁의 문, 담장, 전각들을 헐고, 그 자리에 동물원·식물원·박물관을 설치하며 ‘창경원(昌慶苑)’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 개방합니다.
춘당지 연못, 벚꽃숲, 일본식 정자와 배양당 등 궁궐의 정체성은 완전히 무너졌죠.

“이토 히로부미는 궁중의 숙청을 단행함과 함께 왕자의 은혜를 백성들이 우러러보게 해야 한다며 창경궁 개조를 진언했다.” – 곤도 시로스케, 『이왕궁 비사』

이 개조는 단순한 도시계획이 아니라 조선왕조의 권위와 상징성을 해체하려는 명확한 의도를 담고 있었어요.
일제는 창경궁뿐 아니라 경복궁 → 경복원, 창덕궁 → 창덕원, 덕수궁 → 덕수원으로 바꿔 모두 유원지화하려 했죠.

또한,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도로(현재의 율곡로)를 뚫으려 했는데, 순종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1932년에 강행됩니다.


🤖 순종의 침묵, 그리고 '합의'의 오해

일제는 "순종도 반대하지 않았다"고 주장했지만, 당시 순종은 사실상 실권이 없는 꼭두각시 황제였습니다.
그가 반대한다 해도 막을 수 없었고, 또 당시 유럽의 왕궁들도 일반에 개방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명분을 만들기도 쉬웠죠.

하지만 건물들을 철거하고, 벚꽃을 심고, 동물과 식물을 들여놓으며 ‘궁궐 유원지화’를 추진한 것은 정치적 상징 훼손 그 자체였습니다.


🛠️ 되찾은 자존심, 창경궁의 복원

1981년, 대한민국 정부는 창경궁의 복원을 결정합니다.

  • 1983년: ‘창경원’ 명칭 폐지, ‘창경궁’으로 환원
  • 1984~1986년: 동물원·식물원 철거, 명정전·문정전 복원
  • 1992년: 일본식 장서각 철거

이후 창경궁은 조선의 궁궐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게 되었고, 현재는 조용한 고궁으로 서울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.


🚶 직접 걸어본 창경궁: 고요함 속의 울림

창경궁을 직접 걸어보면, 그 아름다움에 먼저 놀라게 됩니다.

🌿 푸르른 정원과 고즈넉한 전각
🌸 벚꽃과 단풍이 물드는 사계절의 색
🪷 춘당지 연못에 비치는 석조 정자
📷 통명전 뒤로 펼쳐지는 사진 명소

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수탈의 역사와 복원의 시간을 알고 보면, 더욱 뭉클하고 깊은 울림이 다가옵니다.


📝 마무리하며

창경궁은 단순한 옛 궁궐이 아닙니다.
그곳은 조선 왕실의 사랑과 상처, 일제의 훼손과 한국인의 복원이 함께 숨 쉬는 공간입니다.

오늘날 우리가 고궁을 거닌다는 것은 그저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,
그 역사 속에 담긴 의미와 자존심을 되새기는 일이라는 걸 창경궁이 말해주고 있었어요.

서울 여행을 계획하신다면,
조용한 품격과 깊은 이야기를 품은 창경궁에 꼭 한 번 들러보세요. 🙏